사회나 공동체, 꼭 집어서 말한다면 그 차이가 한두 개가 아니겠지만, 그저 우리라는 말을 대신할 수 있는 것으로는 둘 다 부족함이 없다.
홍세화의 글, “나눔과 분배“라는 글 중에 이런 문장이 있다.
‘나눔’은 우리말이고 ‘분배’는 한자말이라는 차이가 있지만, 두 말은 분명 같은 말입니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는 전혀 다른 뜻으로 사용됩니다. ‘나눔’이 ‘독차지’의 반대말의 뉘앙스를 갖고 있다면, 분배는 ‘성장’과 반대이기 때문입니다.
단어의 뉘앙스는 간혹 그 단어의 모든 것이 되기도 한다. 나에게 권위라는 하는 것이 그러하였고, 그 결과 겉으로는 사회적 회색 인간이 되어 버렸는지도 모르지만, 사회나 공동체에는 죽음을 부를 수 있는 전주곡이 될지도 모른다.
아픔을 나눌 수는 있으나 분배할 수는 없다. 물질에 한하면 분배라 하는 것이 원활하다 할 수 있으나 나눔에는 그 앞뒤가 잘 들어맞질 않는다. 우리의 문제는 언제나 집단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작은 소망이기 때문에 개인이 나아가는 그 길이 우리의 길에 놓이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고 꿈을 꾼다.
그 모든 조건 또한 나, 개인에서 출발하므로 개인의 정체성, 신이 부여한 권리나 의무를 말하지 않는다면, 그것 또한 모래 위에 지은 집일 뿐 오래가지 못하는 것은 사회주의의 몰락이라는 교훈이 버티고 있으므로 이런 말의 소용 가치는 느끼지 못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진정으로 남고 우리를 움직이는 것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