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나질 않는다.

왜 자꾸 기억을 하려는지 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이 힘든 시간, 또 잠에서 깨어 멍하니 무엇을 하기는 한다. 통장의 잔고를 보기도 미안하고 부모의 목소리는 더욱 무거운, 그냥 미안이라 하는 것이 되어 버렸다. 참, 안주하기 힘든 삶이 아닌가. 커피와 담배를 예찬했던 나의 모습조차 그냥 그런 나의 한 모습으로 어렴풋이 기억할 뿐 내가 그리 열광했던 영화와 음악이 지금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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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성

어찌 보면 누구나 어떠한 한계를 지니고 있겠고, 그 한계는 태생적일 수도 일시적일 수도 의도적일 수도 있다. 기독교인, 소위 크리스천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한계성은 그 지위나 목적에 상관없이 그들의 믿음에 기인한다. 나 또한 예외가 아니며 신학 또한 그러하다. 한번은 나의 세계관 모든 것을 말 그대로의 내가 속한 세계, 그 세계 안의 인간에 기대어 구성되기를 원한 적이 적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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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의 비겁함

– 어린 시절 언제나 정성일의 글은 나의 목마름을 달래주는 아마 그 이상 나에게 영향을 주었음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글을 읽고 난 후의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그 씁쓸함을 또 다른 목마름을 느끼게 하는 그 무엇이었다. – 우리가 하는 것은 자신의 생각을 세우고 멋들어진 글을 쓰고 그다음 은근슬쩍 도망가거나 자신이 생각한 부득이한 상황을 모면할 수 있는 비겁한 구멍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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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와 다수결

우리가 말하는 민주라 하는 것, 그것에게서 나오는 모든 체제, 그 모든 것 안에는 사람은 없고 언제나 집단만이 존재했다. 아홉을 살리기 위해 하나를 버리고, 그 살린 아홉은 다시 그 아홉의 하나를 위해 여덟을 기꺼이 희생한다. 우리가 크리스챤이라 말하고 자본주의나 민주주의의 실질적인 삶을 숭배하는 것은 크리스챤의 해답인 예수가 말한 것을 잊은 것이고, 권위로 타인으로 해하는 것 또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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